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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ㆍ1 절을 맞아 전국이 다시 한번 태극기의 물결로 뒤덮였다. 이에 맞춰 광복회 광주ㆍ전남 지부에서는 ‘태극기 특별기획전’을 열고, 미공개 태극기 사진을 다수 공개했다.
 
이 가운데 눈길을 끈 것은 1885년 고종 황제의 어가 행렬을 이끄는 대형 태극기의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 깃발이 국가 행사에 등장한 가장 오래된 태극기라고 한다.
 
태극기는 그동안 1882년 8월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에 가는 메이지마루호 선상에서 즉석에서 만든 것처럼 잘못 알려져 왔다. 일국의 상징인 국기를 대신(大臣)이 즉석에서 만들어 내걸었다는 얼토당토않은 비상식적인 이야기가 마치 정설처럼 퍼져 있는 것이다. 이는 시급히 바로 잡아야 할 문제다. 박영효가 태극기를 처음 만들어 내걸었다는 주장은 조선시대 관료 조직을 아프리카 어느 부족 수준 정도의 것으로 보지 않는 이상 상상도 할 수 없는 발상이다.

태극기 도안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는 조선시대 군사 지휘기인 좌둑기(左纛旗)와 기존부터 군주를 상징해왔던 태극팔괘도에서 연유한다. 둑(纛)은 임금의 가마나 군대의 대장 앞에 세우는 군기(軍旗)를 말한다. 새로 공개된 고종황제 행렬 앞에 태극 깃발이 바로 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엄격하게 말하면 애초부터 태극기 창안자를 특정하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태극 문양은 우리가 이미 오래전부터 즐겨 사용해오던 상징물이었다.
 
설사 태극기의 도안이 전통적인 좌둑기나 기존의 태극 8괘에서 유래한 것이라 하더라도 이런 깃발이나 도안과 한 나라를 상징하는 정식 국기는 차원이 다르다.
 
최초의 국기 제정 과정에 대해서는 현재 명확하게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고종실록 1883년 1월 27일(고종 20년)  기사에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에서 아뢰기를 '국기를 이미 제정했으니 팔도와 사도(四都)에 행회(行會)하여 다 알고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하니 윤허했다"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미 국기가 결정되어 있던 상태에서 이 때에 이르러 공식적으로 선포하고 전국적으로 사용을 확대하도록 한 것이다.
 
박영효가 일본에 수신사로 간 것이 1882년 8월이다. 그동안 박영효가 일본으로 가는 배 위에서 국기를 최초로 만들었거나 아니면, 최소한 그가 국가 공식 업무에 태극기를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왔다.
 
하지만, 최근 이보다 앞선 1882년 5월 조미수호통상조약 때 사용된 태극기 도안이 발견됨으로써, 박영효가 최초로 태극기를 만들었다는 것은 고사하고, 공식 업무에 태극기를 처음 사용했다는 것도 사실과 맞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2004년 발견된  태극기를 세간에서는 ‘이응준 태극기’라고 부르는데, <태극기의 탄생>이라는 책을 쓴 소설가 박충훈씨는 “당시 역관이던 이응준이 고종의 명을 받아 현재와 같은 태극 4괘(卦)의 도안을 처음 그렸다”고 주장했다. 현재 학자들도 김홍집의 명을 받은 이응준이 현재와 같은 4괘 태극기 도안을 그렸고, 이후 박영효가 일부 수정한 것을 사용했다는 것을 정설로 인정하는 분위기다. 하지만 이 국기의 도안을 이응준이 했다는 명확한 증거는 없다.
 
1948년 2월 8일 경향신문에 태극기의 유래에 관해 <국기고증변(辨)>이라는 글이 한편 실렸다. 이 글의 필자는 유자후(柳子厚ㆍ1895~ 납북)라는 분으로 경사(經史)에 해박하며 신학문(新學文)에도 능통하였다. 유자후의 국기고증 글에서는 이응준이라는 이름은 등장하지 않는다.
 
<(전략) 국기의 ㅇ處(ㅇ처)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주설이 구구한 모양이니, 혹자는 병자강화조약 때에 제정된 것이라 하고, 혹자는 임오 한미 통상조약 때 선정된 것이라 하고, 또 혹자는 임오군란 후 일본 수신사 박영효씨가 작(作)하였다하기도 한다. 이 세 가지 주장 가운데 최후의 설이 근시(近是)한 것이다.
 
지금까지 참고된 결과를 보면 본래 김옥균씨의 創ㅇ(창ㅇ)로써 김홍집씨와 상의하고 어윤중씨의 찬성을 받은 후에 박영효씨의 동의를 얻어 고종황제께 품달하여 어재가를 받았다는 것이 사실에 가까운듯하다. 그리고 보면 우리 태극기의 창안자는 김옥균씨요. 그 제정자는 고종황제였던 것이다.
 
(중략)우리 태극 8괘의 국기가 이와 같은 경위와 이와 같은 뜻을 갖고 탄생하기는 실로 대조선개국 491년 임오년 7월25일 고종 19년 서력 1882년이니, 지금으로부터 67년 전에 특명전권대사 수신사 박영효씨가 국서를 받들고 일본으로 향하였던 날이다. 그리고 고종황제께서 각국의 기호와 비교하여 만약 고칠 점이 있거든 고치라는 품허까지 내리셨다. (후략)>
 
유자후는 태극기의 최초 창안자로 김옥균을 주목하고 있다. 이런 사실을 종합하면 국기의 도안 과정에 김옥균, 김홍집, 어윤중, 박영효가 골고루 나름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유추할 있다. 즉 국기의 필요성과 제정이라는 중대사를 두고 대신들이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모든 국기 도안과 제정 문제는 고종황제의 지대한 관심 속에서 진행되었고, 고종이 그 중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미 1875년 8월 일본이 일으킨 운양호사건 후 조일수호조규 체결 때부터 조선은 국기의 존재와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역사에 두루 밝고 국가의 독립과 왕권 강화 문제에 민감하던 고종이 국기를 결정하는 중대한 문제에 무관심했을 리가 없다.

국기 문제를 한참 고민하고 있을 무렵 조선은 청나라의 극심한 내정간섭에 시달리고 있었다. 당시 여러 기록을 보면 청은 속국을 뜻하는 용기(龍旗)를 사용하라고 조선에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고종은 이를 묵살하고 조선을 상징하는 별도의 국기를 원했다. 청의 집요한 압력까지 물리치고, 별도의 독립된 국기를 제정하는 과정에서 고종의 확고한 의지가 없다면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렇게 고종의 강력한 의지에 의해 탄생한 것이 바로 태극기이고 이것을 최초로 국가대표의 상징으로 사용한 것이 한미통상 조약 때인 것이다.
 
다만, 이후로도 국기의 최종 도안 문제가 확실하게 매듭지어지지는 않았던 것 같다. 박영효가 일본에 갈 때 8괘가 그려진 태극기를 가지고 갔는데, 이에 대해 소설가 박충훈씨는 고종황제가 자꾸 시비를 거는 청나라의 압력을 피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8괘 태극기와 4괘 태극기를 두 종류를 가지고 가게 했다는 가설을 펴고 있다. 이후 8괘 태극기가 번잡하다는 영국인 선장의 의견을 내세워 그냥 4괘 태극기를 대외적으로 조선의 국기로 확정 짓는 기회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1882년 10월 2일 도쿄 일간신문인 <시사신보>에는 “조선에 지금까지 국기가 없었는데 청국에서 온 마건충이 조선의 국기를 청국의 국기를 모방하여 삼각형의 청색 바탕에 용을 그려 쓰도록 한데 대하여 고종이 크게 분개하여 결단코 거절하면서, 사각형의 옥색 바탕에 태극도를 적색, 청색으로 그리고, 기의 네 귀퉁이에 동서남북의 괘를 붙혀 조선의 국기로 정한다는 명을 하교하였다”고 보도하고 있다. 즉, 고종황제가 태극기 문제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관여하고, 박영효는 이 명령을 따라 태극기를 그렸을 뿐이라는 내용이다.
 
어쨌든, 1882년에서 1883년 태극기를 최종 확정 짓는 과정에서 고종황제와 대신들의 심도있는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졌다. 이 과정에서 고종이 국기의 기본 도안을 주도했다는 것도 여러 자료에도 드러나고 있다. 자료를 떠나, 고종의 명에 의해 국기 제정 작업이 진행되었다는 것은 국가라는 조직 체제를 생각할 때 상식에 속하는 문제다. 
 
이 태극기에는 군민일체(君民: 오늘날의 만민일체)의 사상이 들어있다. 오늘날 우리는 고종황제에게 두 가지 큰 빚을 지고 있는 셈인데 국기인 태극기와 ‘대한(大韓)’이라는 국호가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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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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