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싼 지역은 싱가포르나 홍콩 등 주로 대도시다.
그런데 한 끼 식사 비용만을 따로 비교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지난 10월 ‘세계식량의 날’을 맞아 세계식량계획(WFP)이 국내총생산을 기준으로
국가별 1인당 하루 수입을 비교한 뒤 그를 기준으로 한 끼 식사(콩스튜 기준)에 드는 밥값을 산출했다.
그 결과 미국 뉴욕에서 600㎉의 콩스튜 한 그릇을 먹기 위해선 1.2달러가 들었다.
뉴욕 시민이 하루에 버는 수입의 0.6%에 불과한 푼돈이다.
그에 비해 2010년 대지진을 겪고 독재와 부패가 만연한
카리브해의 빈국 아이티는 72.65달러가 드는 것으로 조사됐다.
그런데 정작 밥값이 가장 비싼 곳은 따로 있었다.
바로 아프리카의 남수단으로서 무려 321달러에 이르렀던 것.
즉, 그들이 콩스튜 한 그릇을 먹는 값은 뉴욕 시민이 321달러를 지불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의미다.
약 10억 명의 인구가 사는 아프리카 대륙은 전 세계 20%의 면적을 차지한다.
그러나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절대 빈곤 인구만 해도 2억7000만 명이다.
전 세계 절대 빈곤 인구의 30%가 아프리카에 몰려 있는 셈이다.
특히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는 식량 부족이 매우 심각하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기아 현상이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데 있다.
유엔인구계획에 의하면 아프리카의 인구는 2060년에 중국과 인도를 합한 것보다 많아진다.
출산율이 높기 때문인데, 2050년이 되면 인구가 지금의 2배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축산 및 관광 등 기존 산업 타격
아프리카 대륙에서 경작이 가능한 땅은 약 8억㏊에 달한다.
한반도 면적의 80배가 넘는 셈이다. 하지만 실제로 경작되고 있는 땅은 2억㏊에 불과하다.
이처럼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는 아프리카 인구를 돕기 위해 아프리카개발은행이 최근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약 4억㏊에 이르는 사바나의 초원을 개발하자는 것.
그 땅들은 옥수수와 콩을 포함한 다양한 작물의 재배가 가능한 곳이다.
아프리카개발은행은 우선 가나, 기니, 콩고, 우간다, 케냐, 잠비아, 모잠비크,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등
8개국에서 약 200만㏊의 사바나를 농지로 전환할 계획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이후 최악의 인도주의적 위기라고
유엔이 거듭 경고하고 있는 아프리카로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소식이다.
그런데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을 개발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이
훨씬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줄 것이라는 주장이 대두되고 있어 주목을 끈다.
미국의 과학 저널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의 최근 기사에 의하면,
그 첫 번째 이유는 기존 산업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선 약 2억 4000만 명의 농민들과 2500만 명의 목축업자들이 사바나 초원에서 가축을 기르고 있다.
초원을 농경지로 전환하면 그들의 생계가 당장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또 하나, 아프리카 사바나 초원에는 사자와 코끼리를 비롯해 표범, 코뿔소, 버팔로 등의 관광 인기 동물 5종이 서식한다.
이 같은 관광산업은 아프리카 외환 수입에서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지난해 케냐의 관광 수입은 약 25억 달러에 이르며,
우간다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9.9%를 관광산업에서 벌어들이고 있다.
두 번째 이유는 초원의 생태학적 가치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자라는 풀들은 곤충, 곰팡이, 박테리아 등의 생물을 품고 있다.
또한 토양에는 식물들과 상호작용하는 유익한 미생물들이 존재한다.
이런 상호작용으로 인해 사바나 초원은 오랜 세월 동안 교란되지 않고 건강하게 유지돼 왔다.
사바나 초원을 농경지로 바꿀 경우 수많은 생물들이 서식지를 잃어 아프리카는 더욱 황폐해질 것이다.
사바나 초원은 천연 탄소 흡수원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기후 변화다.
사바나 초원은 지표 유출 속도를 늦춤으로써 홍수를 방지하는 것은 물론
수분 흡수를 안정화시켜 토지 생태계의 건강 및 탄력성을 향상시키는 역할을 한다.
사바나 초원은 천연 탄소 흡수원이기도 하다.
탄소 격리라고 불리는 과정을 통해 대기로부터 이산화탄소를 흡수․저장하기 때문이다.
초지에서의 탄소 축적은 주로 토양 유기물이 있는 지반 아래에서 발생하는데,
4억㏊가 넘는 사바나 초원이 없어질 경우 수백만 년 동안 저장되어 있던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가 대기로 방출되어 지구온난화가 더욱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특히 열대우림 주변의 사바나 지역은 바이오 작물 재배의 최적지로 꼽힌다.
물과 햇빛이 충분하고 기온도 높기 때문이다. 옥수수나 유채, 콩 같은 바이오 작물을 재배해
화석연료를 대체하면 대기 중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지만 바이오 작물 재배를 위해 초원을 파괴할 경우 계산법은 달라진다.
당장은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을지 몰라도
그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해 저장하는 역할을 했던 초원이 더 이상 그 역할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즉, 화석연료를 바이오연료로 대체해 나타나는 온실가스 감축 효과가
초기 농지 개발 시 초원 파괴로 나타나는 온실가스 증가 효과를 상쇄하는 데
걸리는 시간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탄소환불시간’이라 하는데, 2015년에 네덜란드 등의 국제 공동 연구팀이
바이오작물 재배로 인한 탄소환불시간을 전 지구적으로 산출한 적이 있다.
그 결과 아프리카 같은 열대지역의 탄소환불시간은 최고 313년으로 밝혀졌다.
또한 아프리카 사바나 지역으로 한정할 경우에도 50~100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바이오 작물을 재배할 경우 50~3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화석연료를 지속해서 대체해야
초원 파괴로 인한 초기의 부정적인 영향을 상쇄하고 그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의미다.
사바나 초원을 농지로 개발하는 것은 이리저리 따져볼 때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셈이다.